Categorie 0 05/04/2017

한 장의 사진을 골랐다. 민주, 현주와 이 사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사진의 하단에는 케이크에 꽂아놓은 초처럼 나무줄기가 가지런히 솟아올라 와 있다. 상단에는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햇살이 이쪽으로 비춰들어온다. 때는 8월 여름이었고, 장소는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폴 세잔의 집. 친구와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누나와 그의 엄마가 거기에 함께 갔다. 모두 정원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나는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인적이 드문 정원 끝에 다다랐다. 텅 빈 하얀 막을 보았다. 그 위로 투영된 나무 그림자가 한여름 그늘에서 부는 미세한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그 장면이 아름답다고 느꼈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 중앙에 자리 잡은 나무 그림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작 사진을 찍게 된 이유가 그것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나는 민주와 현주에게 말했다. 너희랑 사진 찍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데, 그 사진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잘 찍었는지 얘기해주고 싶을 때마다 그게 잘 안돼서 답답해. 현주는 자신에게 사진을 가르쳐줬던 어느 사진가가 하던 것처럼, 사진 위에 보이는 것들을 손바닥 위에 그려줘 보라고 충고했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사진 위로 보이는 것 중에는 손바닥 위에 그려줄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사진에는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 그러자, 가끔 지나치게 명쾌해지는 현주가 말했다. 포기하세요. 그런 건 그냥 포기하세요, 라고. 현주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저 평평하기만 한 이미지로 변신한 나무처럼, 사진은 눈 외의 모든 감각을 무색하게 만든다. 안 보이는 사람과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청각장애인에게 멜로디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음악에는 적어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의 운동이 있으나, 인화지의 질감은 결코 사진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므로.

그렇다면 나는 폴 세잔의 집에서 찍은 나무 그림자 사진에 관해 민주와 현주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것이 나을까? 마치 그 사진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내가 민주와 현주에게 어떤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대답했다. 궁금한 건 바로 외모를 제외한 “모든 것”이라고. 만일 ‘외모’라는 단어를 ‘표면’으로 치환한다면, 아이들이 알고자 하는 세상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것들일 것이다. 나는 한 장의 사진을 앞에 두고서도, 그것의 표면을 떠나 그 안쪽, 혹은 그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에서 보여지는 것들에 관한 시각적 묘사는, 시각장애인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사진을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시각 세계와 전혀 닮지 않았다. “나는 시력(sight)을 잃었지만, 시각(vision)을 잃지는 않았다.”*1 – 나는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 사진가 앨리스 윙월(Alice Wingwall)이 했던 이 말을 자주 상기했다. 그리고, 빛이 처리되는 시각체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이미지가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미지가 시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각화의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시작된다.”*2

민주, 현주가 소설가가 써준 어떤 사람의 사진에 관한 원고를 읽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나도 어떤 한 사람의 사진 한 장을 아무렇게나 떠올려봤다. 보지 않고, 그저 머릿속으로. 떠오른 사진 속의 사람은 오래된 내 친구다. 그는 양팔을 젖히고 누워있다. 마치 폴 세잔의 집에서 보았던 팔 벌린 나무처럼. 친구의 파란 티셔츠 겨드랑이에 빵꾸가 났다. 사진 속 친구의 시선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나를 향해있다. 그의 시선, 그 눈빛은 세상에 실망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그 사진을 떠올리고, 사진은 내게 친구의 눈빛을 상기시킨다. 겨드랑이에 난 빵꾸는 친구를 떠올리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러고 나니 친구가 몹시 그립다. 더이상 나는 한 장의 사진 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친구는 수백 개의 기억들로 뭉쳐진 덩어리로 변신한다. 그때 나는 민주와 현주에게 어떤 사람의 사진에 관해 설명해주는 것을 포기하고, 그 사람에 관한 기억들을 덩어리째 전달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것은 공유할 수 있을 거라 믿었으므로. 카프카는 썼다. “하지만 얼굴이란 천 개의 사진을 보아야만 완전히 알 수 있습니다.”*3 이 말은 어쩐지 천 개의 사진조차도 얼굴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는 소설가의 역설처럼 들린다.

*1

<Sight Unseen :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UCR ARTSblock, 2009

*2

ibid.

*3

F. 카프카,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1916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