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봄이런가>, 2018

 

봉투를 열자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형은 사진의 모서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란 천 개의 사진을 봐야 아는 거라고 하던데, 형의 사진이라고는 이 한 장뿐이다. 형의 손이 흰 두루마기 허리춤에서 어색하게 주먹을 쥐려고 한다. 그 곁 탁자 위 꽃병을, 사진가는 흰 국화로 가득 채웠다.

형이 좋아하던 꽃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듯 바람 따라 아무렇게나 흔들흔들 춤추는 꽃이었다. 불이라도 난 듯 삽시간에 번졌다가, 꽃은 어느 순간 타버린 재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꽃봉오리가 터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부턴가 형은 방문 앞에 장막을 치고 창문을 검은 종이로 발랐다.

늘 웅크리고 앉던 책상, 그 앞 흰 종이에 굳은 글씨로 써 붙여놓았더라고 전해지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이다. 한때는 방방곡곡 금을 캐러 다녔다. 지금 어두운 방에 머무는 것은 어둠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두운 방이 밝아지길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 누워 장막의 어느 틈을 타고 들어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풍경은 너무 멀어서 소리가 없다. 얼굴 없는 그림자들이 흰 벽을 어지럽힌다. 처마 위에 쌓였던 눈은 녹아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꽃나무 언저리가 반짝거린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늘고 긴 물줄기는 아랫목 발치 어딘가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와 차가운 등골을 따라 흘러간다.

움직이기 싫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직 춤추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 거다.

 

며칠 있으면 그는 나를 찾아 오려니, 그때까지 이 편지를 고이 접어두었다. 이것이 형에게 보내는 나의 답장입니다. 고 그주머니에 도루 넣어주리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봉투에 편지를 넣어 요밑에다가 깔아둔다.*

*김유정, 밤이 조금만 짤럿드면,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