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노트, 2018

 

최근 조각가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감각의 끝이 닿는 곳에 있는 건 살아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죽음의 편에 놓인 아버지. 그는 선반 위에 크고 작은 조각품들을 남겨 두고 갔다. 그런데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니, 이상하게 어떤 생명력이 손을 내미는 듯했다. 지난겨울에는 만주지방과 오호츠크해 연안을 여행했다. 풍경은 얼어붙고 정지되고 저장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움직이기 싫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매일 봄이 오기만 기다리던 30년대 소설가가 떠올랐다. 약값을 벌기 위해 썼던 소설가의 글은 온통 날씨 이야기다. 소설가가 확신을 갖고 기다리던 건 고작 멀리 있는 계절뿐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봄이 되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는 시간 속에서 하나는 다른 하나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마치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하나의 포즈가 다른 포즈로 바뀌어 가는 과정처럼. 사진가의 기관은 눈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사진가의 손가락은 곧바로 또 다른 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