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은 멀어서 소리가 없다>, 2020
Visual Vol.16 미술과 서사, 서사와 미술, 2020


모래사장 위에 두 발을 딛고 바다를 본다. 해는 이제 막 떠올랐고 파도는 멀리에서 밀려온다. 파인더에 눈을 대고 삼각대의 머리를 천천히 돌려본다. 어느 사이 날아온 하얀 새 한 마리가 화면 안에 크고 둥근 원을 그려 보인다. 새는 양 날개를 펼치고 가늘고 긴 다리를 곧게 폈다. 털이 바람을 가른다. 둥실 떠오른다. 눈앞이 아찔하다.

그 사람이 지난 반년 동안 베를린에 한 번밖에 오지 않았다고요? 그래요? 왜지요? 토요일 낮,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저녁에 프라하를 떠나 일요일에 베를린에서 지내고 저녁에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면 되는데요. 좀 힘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대수롭지 않은 일이잖아요. 어째서 그는 그렇게 하지 않나요?
(1913년 2월 5일에서 6일)

소설가의 편지는 쓰인 것이 아니라 토해낸 것처럼 보인다. 매일 두세 통의 편지를 보내며 상대에게 부담을 줄까 봐 불안해한다. 불안해져서 전보를 친다. 연인과의 만남을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밀어넣는다. 만남이 방치된 미결의 방. 거기에는 자신의 소설 속에 나오는 요제프 K와 K, 그리고 그레고르도 살고 있다.

사진가라면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던 사진가가 있었다.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다면 사진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보이그랜더, 마미야, 올림푸스펜을 번갈아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비밀 블로그를 통해 거칠게 스캔한 사진을 주고받았다. 사진가는 시장에서 만난 한국인에게서 한국말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낮과 밤이 거꾸로라서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말하는 사람, 째려보는 사람, 사막을 달리는 사람,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 발자크 상을 닮은 노숙자, 찐빵을 물고 있는 연인,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여자, 추운 공원에 앉아 아코디언을 켜는 남자. 사진이 된 사람들이 눈을 파고들어 심장을 덮치고 머릿속에서 다시 피어났다.

궁지에 몰린 그레고르가 마지막에 가서 온몸을 던져 지켜낸 것은 벽에 붙어 있던, 털로 뒤덮인 어떤 여자의 사진이었다.

침대차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차창 밖 풍경을 본다. 끝없이 펼쳐진 논 한가운데 작은 집을 바라보며 바로 저 집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새로운 삶을 꿈꾼다. 산 너머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피 흘리듯 부서져 내리는 붉은 나뭇가지를 떠올린다. 깊은 숲을 통과할 때는 그 속에 버려져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상황을 생각해본다. 잡아먹힐지도 모르지만, 극적으로 살아나 도로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기차의 네모난 창 너머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미지의 파편들. 그걸 바라보는 일은 종종 최초의 영화적 체험과 비교되곤 한다. 그렇다면 영화관에 앉아 하얀 영사막을 바라보는 일은 터널을 통과하는 검은 유리창을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지의 지지체 앞에서, 나는 곧이어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어둠을 박차고 나와 햇빛과 대면하기를, 얼음이 녹기를,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기를, 뻐근한 관절 사이로 윤기가 흘러넘쳐 한층 키가 커진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기를, 훨훨 날아갈 것만 같은 봄이 오기를.

하얀 마법의 가루를 뿌린 체조선수가 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다. 깊은 생각에 골몰한 듯 축 늘어져 있던 그가 마침내 거대한 시계추처럼 온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있는 힘껏 공중으로 날아오르자마자 그대로 추락했을 때, 바닥에 엎드려 누워 있는 그의 몸은 양 날개를 활짝 펼친 한 마리 새의 형상과 똑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체조선수가 정말로 날아오르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십 년 전부터 길러온 근육에는 이제 막 날개가 돋아나려 하고 있었다. 체조선수는 몸을 일으켜 새빨개진 얼굴을 들고 높은 곳을 바라본다. 다시 저기로 올라갈 것이다.

천문가는 별을 보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폴리아티스트는 새의 커다란 날갯짓을 상상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는 배낭에서 꺼낸 케인을 익숙한 동작으로 펼치고, 묵묵히 걸어나간다. 그의 눈은 고장 난 렌즈처럼 쉬지 않고 흔들린다. 그는 알피를 앓고 있었다. 커튼이 닫히듯 시야가 좁아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아예 이마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본다.

액정을 쥐고 있는 차갑고 섬세한 손. 그 손끝을 바로 좀 전까지도 담궈놨던 곳에는 작고 동그랗게 굴러다니는 수많은 점들이 있다. 그가 가끔씩 잠들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손끝에 그 점들 중 몇몇이 달라붙어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지도 모른 채 여전히 굴러다니며 모든 기억을 깨우려 하기 때문이다.

시골은 잘 다녀왔어. 가는 길에 내장산에 들러서 단풍 구경도 했어.
예쁜 은행나무 잎 몇 개를 모았는데 작은 엄마가 딸내미 숙제라며 다 뺐어 갔어.
하필 그날이 단풍 구경 인파가 피크를 이룬 날이라 차가 막혀서 좀 짜증이 났어.
아홉시 뉴스에도 나오더라. “내장산 붐비는 인파”라는 제목으로.
어제 오늘 비 오고 나서 기온이 뚝 떨어졌어. 후드티 하나로는 견디기 힘들다.
좀 전에도 집에 오는데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
내일부터는 더 두껍게 껴입어야 할 것 같아.
거기는 더 춥겠지?

(2004년 11월 2일)

바다에 도착했다. 해는 이제 막 완전히 떠올랐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바닷가에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어제 아침에는 똑같은 옷에 똑같은 신발을 신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 꼭 꿈만 같다. 뭍의 포물선을 따라 무질서하게 정박해 있는 갯바위를 본다. 엔진을 밟아 새카만 고속도로를 달리던 지난밤, 갯바위는 황금빛의 거대한 빙하처럼 머나먼 대양으로부터 천천히 떠밀려 오다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푹, 바위는 모래사장 안으로 부드럽게 안긴다. 가방에서 망원 렌즈를 꺼낸다. 처음으로 갖게 된 긴 구경의 삼백 밀리 렌즈. 바다에 온 이유는 이 망원 렌즈 때문이다. 카메라의 접안부를 열어 렌즈를 끼운다. 모래 위로 삼각대를 세우고 장비를 들어 올린다. 파인더에 눈을 대자 갯바위 하나가 얼굴을 번쩍 들더니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깜짝이야.

그러나 풍경은 멀어서 소리가 없다. 손을 뻗어도 만져지지 않는다.


*이탤릭체로 된 두 번째 문단은 카프카가 펠리체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편지, 변난수, 권세훈 옮김, 솔출판사.)
*이탤릭체로 된 열세 번째 문단은 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