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원경과 사물들>, 2021
월간미술 Vol.433 우주와 예술, 그 너머: COSMOS X ART, 2021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망원경 만드는 공방을 함께 쓰던 천문가의 동료다. 천문가는 6인치 뉴토니안 망원경을 만들던 중에 자신이 갖고 있던 병을 발견했다. 천문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동료는 6인치 뉴토니안 망원경을 마저 완성한 후 유언대로 그의 모교에 기증했다.

나는 천문가의 망원경을 찾아다녔고 수소문 끝에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창고에서 망원경을 꺼내다 준 남자는 어떻게 다루는지 몰라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다고 했다. 웹상에 남겨진 천문가의 행적을 쫓다가 공방 게시판에서 그가 쓴 짧은 글을 읽었다. 새벽 4시 15분입니다. 이 시간에 컴퓨터 사용자가 별로 없습니다. 완치하여 나가서 자작한 망원경으로 별을…… 이상하게 글은 그렇게 뚝 끊겼다.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카바티나>의 다섯 번째 악장에는 ‘베클램트(Beklemmt)’라는 지시어가 씌어있다. ‘압박하며’, ‘답답하게’, ‘숨이 막힐 듯’이라는 뜻이다. 이 지시어가 붙은 바이올린 연주를 듣다 보면 끝없이 넓은 새카만 우주에 완전무결하게 혼자 남겨진 한 존재가 떠오른다.

새벽 4시 15분. 아직까지도 어둠 속에 깨어있었던가, 아니면 깊은 밤 도중에 예기치 않게 눈을 떴나. 천문가는 밤하늘을 함께 꿈꾸던 동료들과의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천문가들은 춥고 긴 겨울밤을 좋아한다. 별이 유난히 밝기 때문이다.

창고에 방치된 채 아직 한 번도 하늘을 보지 못한 망원경. 나는 그것을 가지고 야외로 나가는 대신, 작업실로 가지고 와서 검은 배경지 앞에 두었다.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다가 천문가가 게시판에 쓴 글을 여러 번 정독했다. 그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 닿고 싶었다.

최근에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런 저런 사물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적막의 세계 그 맨 마지막에 남겨진 완전한 고독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러한 외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마음에 관하여 생각해보았다.

The Snark: Suddenly Vanishing Away Curated by Sungah Serena Choo, Installation view, 2021, Photograph: CJY ART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