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2022
개인전내가 안고 있는 겨울, 페리지갤러리, 서울, 2022
이번 전시의 구상을 시작할 때부터 겨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꽤 오래전부터 겨울에 관해 생각했고, 그동안 이런저런 방식으로 겨울을 표현해 보기도 했다. 내가 그리는 겨울은 자신의 계절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추운 겨울. 그러므로 그곳은 정지 상태다. 의자는 비어있고 공사는 연기되고 사람들은 말이 없다. 양 볼은 거칠고, 시선은 늘 입김에 파묻혀 있으며, 내쉬는 숨은 그대로 입술 위에 얼어붙는다. 창문의 틈새를 모조리 틀어막았기 때문에 겨울의 시간은 결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겨울에서 시간은 방 안을 하염없이 맴돈다. 영화가 세상에 오기 직전 황제 파노라마의 입체경 사진을 보던 그 침착하고 느린 시선처럼, 겨울에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겨울은 냉동 상태의 겨울이 아니라, 그것이 녹아 흐르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겨울이다. 겨울의 무엇을 사진으로 찍을지 고민하다가 천문가를 떠올렸다. 천문가는 수천 번 거울을 연마하여 자작 망원경을 만들던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망원경을 마저 완성하여 천문가가 유언으로 남긴 단체에 기증했다. 그러나 단체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반짝이는 금속 재질의 그것을 지하실에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 번도 밤하늘을 본 적 없는 망원경. 수소문 끝에 그것의 행방을 찾아 작업실로 가지고 와서 사진으로 찍었다. 망원경을 찍은 이유는 천문가의 마음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사진으로 찍어야 겨울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주변 풍경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겨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알게 되었다.
겨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작업실에 오던 날 겨울은 품 안에 얇은 시집 한 권을 안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것을 불쑥 내밀었다. 나는 그날부터 시를 읽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는 시를 어떻게 읽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새롭게 터득한 방식은 시를 읽지 않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겨울은 시간이고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계절을 다루는 시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삶의 형상을 그려 보인다. 잘 있는지, 그곳은 어떤지, 그리고 다음에는 꼭 만나자고 안부와 인사를 건넨다. 겨울의 얼굴을 찍은 이후로 겨울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관통하며 만난 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우리는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나는 살아있는 두 사람이 똑같은 무게로 기대어 있는 ’ㅅ’자의 형상을 자주 떠올렸다.
겨울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두루미는 겨울에서 또 다른 겨울로 쉬지 않고 옮겨간다. 올겨울에 난생처음 그를 만났다. 철원의 평야를 굽이치는 좁은 논둑을 따라가면 시베리아 동쪽에서부터 꼬박 사나흘을 날아온 그를 볼 수 있다. 그는 첨단 특수 안경을 쓴 것처럼 번뜩이는 눈매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황금빛 논밭에 떨어진 낟알을 주워 먹는다. 두루미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인적을 느끼지 않도록 살금살금 망원렌즈를 꺼내어 삼각대 위에 올렸다. 파인더 속 두루미는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서서 파인더 바깥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진 300미리 렌즈로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두루미는 악보를 닮은 자신의 의연한 자태를 통해 충분히 알아들을 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겨울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관통하며 만난 이들, 그들의 사진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난 일 년간 요즘 뭘 찍고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인물사진을 찍는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사진을 펼쳐놓고 보니 이 사진들을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자신이 없다. 다음에 또 누가 물으면 어떤 세계의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지금은 소설가가 된 천문가는 별의 탄생 과정에 관해 설명하다가 방 안을 맴도는 고양이 털 뭉치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던 고양이 털들은 어느 순간 구심력을 형성하여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초신성이 남긴 잔해가 우주를 떠돌다가 서로 결합하여 강력한 빛을 만들고 끝내 또 다른 별이 되어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고양이를 품에 안을 때마다 천문가였던 소설가가 그려 보인 별의 탄생을 떠올리며 너는 내가 안고 있는 별이라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