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의 사진> 서문, 2015
어떤 사람의 사진, 서울시창작공간 성북예술창작센터, 2015
그러나 그 안에 사진이 있고, 그것은 그대가 언젠가 아름다운 날 기차에서 내려
내 앞으로 다가올 그때처럼 미끄러져 나옵니다.
– F. 카프카,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1912년 12월 3일
나는 지난 몇 년간, 시각장애인의 미술교육과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우리들의 눈>*과 인연을 맺고, 다양한 시각장애인들을 만났다. 안 보이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들의 편에서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시도가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 쌍둥이 자매 민주와 현주를 만났다. 청주맹학교를 처음 방문하던 날, 쌍둥이는 낯선 내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줬다. 그 작고 따뜻한 손이 너무 고마웠다. 아베 드 레페(l’Abbé de L’Epée)가 수화의 시스템화를 착상하게 된 계기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청각장애 쌍둥이가 둘만의 소통을 위해 사용하던 제스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민주와 현주가 똑같은 손을 맞잡고 똑같은 입술로 귓속말하는 것을 보면서,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좁고 긴 골목에 서 있는 청각장애 쌍둥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꼭 닮은 두 소녀가 서로 속삭이며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건지 궁금했다.
교실은 식당 옆이었고, 식당은 기숙사의 옆이었다. 운동장은 교실과 식당과 기숙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둥글게 그리고 있었다. 나는 민주와 현주에게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빛과 어둠의 구별도 힘든 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들의 머릿속 이미지와 소통할 수 있을까? 문득,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 내가 해본 가장 놀라운 경험은 사람을 알게 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별과 행성과 입자들. 그렇듯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자. 서로 다른 다양한 행성들처럼 제각각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시야는 더 크고 넓어질 거야. 눈으로 보이는 창문이 없다면, 언어의 창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일곱 명의 소설가와 작가들에게 어떤 사람의 사진을 말과 글을 통해 시각화시켜보자고 제안했다. 자, 이게 그 사람이야, 하며, 한 장의 사진 대신 한 장의 글을 내밀어보자고 ; 한 장의 글 안에 한 장의 사진이 있고, 한 장의 사진에서 어떤 한 사람이 미끄러져 나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