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전 <안내인> 서문, 2017


에티엔 쥘 마레가 1883년에 촬영한 질주하는 남자의 사진을 보다가 맹학교에서 만난 한 시각장애 소년이 떠올랐다. 다섯 살 무렵에 시력을 잃은 소년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점자를 배웠다. 처음에는 매일 혼이 났다. 촘촘히 배치된 여섯 개의 점들을 지름이 5밀리미터도 안 되는 손끝의 면적으로 판독해 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년은 집에 돌아가는 금요일만 기다렸다. 하지만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점자를 찍는 고학년 형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연습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점자가 잘 느껴졌다.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점자가 끊김 없이 써지고, 술술 읽히던 그 순간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종이를 점판 사이에 끼운 후에 점필을 꺼낸다. 뾰족한 점필의 끝이 하얗고 편편한 종이의 표면을 톡, 톡 터뜨린다. 반대편으로 점들이 쏟아져 내린다. 종이를 뒤집으면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점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매달린 점 끝에 소년의 손끝이 닿는다. 처음엔 망설이다가도, 섬세한 손끝은 금새 점과 점 사이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날아가는 공이 허공에 멈춰서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듯이, 소년이 점과 점 사이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