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학자의 망막> 에필로그, 2018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두산갤러리, 서울, 2018) 전시에 부쳐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리 있는 것,
몸속 깊숙이 감추어진 것, 투명한 것, 사라지는 것,
심지어 영혼까지도…
Ce qui est trop près ou trop loin,
ce qui est caché dans les replis du corps,
ce qui est transparent, ce qui disparaît
– et même l’âme…
Georges Didi-Huberman, « La photographie scientifique et pseudo-scientifique »,
in. Histoire de la photographie, 1986.





장 미트리는 영화가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발견이 축적되어 태어난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 영화사 »를 시작한다. 그 발견 중의 하나가, 회전하는 단단한 원판 대신 기다란 띠 모양의 부드러운 지지체 위에 연속적인 이미지를 기록하는 아이디어였다. 그 원리를 고안해 낸 이는 어느 생리학자였다. 그는 평생 생물체의 운동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영화가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영화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학자가 맨눈으로 보는 현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생리학자는 안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카메라는 하늘을 나는 새의 운동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다. 생김새가 사냥총과 똑같았다. 방아쇠도 있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면 학자의 총은 날아가는 새를 잡는 대신, 그 날갯짓 하나하나를 사진 원판 위에 박제했다. 이미지를 창조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학자는 직접 만든 기기를 통해서 몰랐던 이미지를 발견하려 했다. 들여다보면 그 안에 놀라운 진실이 숨겨져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걸어가는 코끼리, 헤엄치는 물고기, 뛰어내리는 고양이, 날아가는 공과 달려가는 사람의 운동을 기록하고 관찰하고 분석했다. 분석은 끝이 없었다. 1초는 1882년에 500개로 쪼개지더니 1889년에는 천 개에서 만 개로 나누어지다가 1891년에 2만5천 개가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고자 했던 건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의 운동이었다.


보름달 직전의 달
천문 관측 동호회 사이트를 뒤지다가 첫 번째 천문가가 찍은 달 사진을 보았다. 초저녁에는 일등성과 옅은 구름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별이 자취를 감추고 안정된 달의 모습만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7.5센티미터의 폭설이 쏟아지기 전, 조용한 하늘에서 본 보름달 직전의 달이었다. 산 중턱 폐교 운동장에서 첫 번째 천문가를 만났다. 그는 우주복처럼 생긴 방한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망원경의 접안렌즈를 대주고 있었다. 자전거 바퀴와 커튼 봉, 합판, 각종 너트와 볼트를 가지고 만든 14인치 스트링 돕 반사 망원경이었다. 그는 내게도 망원경을 권했다. 첫 번째 천문가가 만든 돕소니안으로 난생처음 밤하늘을 봤다.

거울의 표면
망원경 만드는 일이 취미인 두 번째 천문가는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오히려 머리맡에 붙여놓은 지도를 바라보는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그가 만든 망원경 중에는 아직 한 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는 망원경 안에 들어가는 거울을 수백 번, 수천 번 손으로 직접 갈았다. 그리고 그 연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기기를 만들었다. 푸코테스터라고 불리는 기기는 연마된 거울의 표면에 빛줄기를 쏘아 그 형상을 맞은편 벽면 위로 투사시킨다. 그렇게 시각화된 거울의 표면은, 천문가가 만든 망원경이 천체의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그의 망막면 위로 반사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게성운
초신성은 별의 탄생이 아니라 별의 죽음이다. 별은 죽을 때 엄청난 빛을 쏟아낸다. 예측할 수 없는 초신성의 출현은 끈기 있게 하늘을 관측하던 아마추어 천문가들에 의해 발견되곤 한다. 세 번째 천문가가 자신이 근무하는 천문대의 전파 망원경을 통해 촬영한 게성운 사진을 보여주면서 1054년에 나타난 초신성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뺄셈을 해보고서야 그게 천 년 전에 죽은 별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깜짝 놀랐다. 그 잔해가 마치 망막 위에 남은 잔상처럼 느껴졌다.


네 번째 천문가는 6인치 뉴토니안 망원경을 만들던 중에 자신이 갖고 있던 병을 발견했다.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공방을 나눠 쓰면서 함께 망원경을 만들던 동료였다. 동료는 네 번째 천문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유언대로 망원경을 마저 완성해서 그의 모교에 기증했다. 나는 네 번째 천문가의 망원경을 찾아다녔다. 수소문 끝에 그것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창고에서 망원경을 꺼내다 준 남자는 어떻게 다루는지 몰라서 그냥 보관만 하고 있다고 했다. 공방 게시판에서 네 번째 천문가가 남긴 짧은 글을 읽었다. 새벽 4시 15분입니다. 이 시간에 컴퓨터 사용자가 별로 없습니다. 완치하여 나가서 자작한 망원경으로 별을…… 글은 그렇게 뚝 끊겼다.

금성
다섯 번째 천문가의 동아리 방에서, 20년 가까이 선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월이’라는 이름의 굴절 망원경을 구경했다. 엠티를 갈 때마다 명월이로 밤하늘 사진을 찍어온다고 했다. 컴퓨터에는 페르세우스 이중 성단과 NGC869, NGC884, 그리고 며칠 전 동아리 방이 있는 건물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종강 파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고 한다. 정말 추웠다. 망원경을 설치하고 하늘을 보니, 어느새 겨울 별자리들은 지고 봄 별자리들이 떠올라 있었다. 가장 밝게 빛나고 있던 건 역시 금성이었다.

목성
여섯 번째 천문가가 행성 사진을 얻는 과정에 관하여 설명해주었다. 먼저 웹캠으로 동영상을 촬영한다. 거기에서 골라낸 수백 장의 프레임을 겹쳐서 노이즈를 제거하고, 색과 명도를 조절한다. 그는 그것이 ‘파헤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파헤치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그는 특히 목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여섯 번째 천문가가 960장의 프레임을 파헤쳐 찾아낸 것은 목성의 대적반과, 그의 위성 유로파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안드로메다은하
안드로메다은하를 보여주던 일곱 번째 천문가는 그게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긴 노출 시간으로 촬영된 거라고 했다. 10분씩 노출시킨 46개 프레임의 L필터 이미지와 12개 프레임의 RGB필터 이미지, 그리고 20분씩 노출시킨 3개 프레임의 Ha필터 이미지가 합쳐졌다. 19세기 사진 위로 누적된 모델의 늙어가는 주름처럼, 한 장의 천문 사진은 우주의 시공간을 압축한다. 220만 광년 거리의 아득한 안드로메다은하는 일곱 번째 천문가가 찍은 사진에서 그의 팽대부와 먼지 띠를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