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사진

이 프로젝트는 일곱 명의 소설가와 작가들이 시각장애 쌍둥이 이민주, 이현주에게 각각 한 편의 원고를 써서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원고는 한 장의 사진을 모티브로 하여, 어떤 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한다. 원고를 읽은 쌍둥이는 작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그리고 일곱 명의 작가들을 통해 알게 된 일곱 명의 어떤 사람들 앞으로 편지를 썼다.
낭독공연
이민주+이현주, 구자형, 조하피
2015년 12월 19일
갤러리 맺음, 성북예술창작센터
글로 쓴 어떤 사람의 사진 (발췌)
나는 사진을 꼼꼼히 조금 더 살폈어. 그랬더니, 맙소사. 눈사람의 뿔처럼 생긴 곳에 집이 한 채 있는 거야. 사람도 있었어. 마당에. 일곱 명 씩이나. 그 중 여섯은 의자에 앉아있었지. 웬일인지 이발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때 서 있던 사람이 나한테 손을 흔드는 거야.
“안녕! 반가워. 사진을 이렇게 살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루…… 루이 브라유?”
“응. 여기 여섯은 나의 아이들.”
“그, 근데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물론. 나는 못하는 게 없어.”
그가 계속 말했어. 나의 아이들은 모두 열 둘. 지구에 여섯, 소행성에 여섯. 소행성에서 지구로 가면 몸이 짜부라진다네. 중력 때문에. 작은 점 크기로.
<여섯 개의 점>, 목승원
선배의 얼굴을 짚어봅니다. 손가락 하나에 포개어질 만큼 선배는 아주 작습니다. 사진 속에서 선배의 모습을 지워버린대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은 단체사진. 문득 궁금해집니다. 나는 왜 선배를 좋아했던 걸까. 다른 그림 찾기를 하듯 선배의 특별한 점을 찾다 어깨를 누르는 가방끈을 발견했어요. 아무도 가방을 메지 않았는데 선배만 어깨를 가로지르는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양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채 서 있는 사람도 선배가 유일합니다. 새내기였던 제가 선배의 휴대폰을 몰래 봤던 날, 선배에게 반해버렸던 그때가 떠올랐어요.
<5382>, 최다경
다시 사진을 본다. 그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워 가장 높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경찰에게 끌려내려오지 않으려고 했던거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지붕 위의 자신을 쳐다보는 게 부끄러웠던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무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내기 위해 전단지나 현수막 하나 없이 오로지 목청 하나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던 거다. 을밀대 앞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강주룡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강주룡>, 정록
한편에서 노란 별이 긴 줄을 그었다. 또 다른 별이 반짝이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하늘은 예고대로 작동했다. 실타래가 풀어졌다. 떨어질 수 있는 모든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의 몸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고 잠시 착각했다. 빛의 꼬리들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내 잦아들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커다란 섬광이 번쩍이더니 사라졌다. 하늘은 왜인지 전보다 더 깜깜해졌다. 몸을 일으켜 옷을 털었다. 그때까지도 안나는 꼼짝하지 않은 채로 말이 없었다. 안나를 먼저 내려보내고서 나는 모서리에 좀 더 걸터앉아 있었다. 나도 곧 내려가야 했다.
<유성우>, 홍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