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령, 겨울로 가려는 사람: 사진가 전명은과 그의 작업에 대해서 

2021

‘사진-픽션: 사진의 안쪽을 쓰다’, <보스토크 VOSTOK> VOL. 28에 수록

이미지에 가닿기 전까지가 사진이다

스무 살 무렵, 전명은은 소설을 쓰려 했다. 제목은 『겨울에서』. 두 챕터를 쓰고서 그녀는 더 쓸 수 없다고 느꼈다. 초고를 서랍에 넣어두었다. 이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사진 찍는 사람이 되었고, 소설은 미완성인 채 서랍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소설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따금 그것을 서랍에서 꺼내어보기도 했다. 소설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죽었다 여겼던 납작한 활자에 서서히 피가 도는 듯했다. 활자 속에는 그 시간 그 기억이 응축되어 담겨 있었으므로. 소설 쓰기를 중단했지만 그녀는 그 경험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겨울이란 세계는 가상이 아닌 내적 진실이었다.

『겨울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겨울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데서 시작된다. 소설 속에서 겨울은 하나의 계절이 아닌 공간이며, 가을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세계다. ‘나’는 오랜 시간 그 도시로 갈 수 있길 바랐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마는 겨울이란 도시에, 이 세상을 떠난 존재들과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지도 썩지도 않은 채 저장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잊힌 존재들과 그 기억을 찾기 위해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떠난다.

스무 살의 전명은은 소설 속 ‘내’가 겨울로 향하던 시간까지를 쓸 수 있었다. 정작 ‘내’가 겨울에 닿자, 쓰고자 했던 첫 마음이 조금씩 부스러졌다. 그 소설이 끝내 완성되지 못한 건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어딘가에 도달한 모습보다는 거기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다음 계절을 기다려 결국 새로운 계절을 맞는 일보다는, 기다림 자체”가 소중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분명 그녀는 겨울에 가닿기를 열망했을 테지만, 겨울에 닿는 일보다 겨울을 기다리는 동안 겨울을 생각하는 일을 보다 원했던 것이다.

나는 전명은의 소설을 읽고 싶었다. 세상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하나뿐인 미완의 소설을. 그러나 보여 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아니, 못 했다기보다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녀처럼, 소설을 직접 읽기보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의 소설은 내가 상상한 소설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나의 소설가 친구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먼 별』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비행기로 칠레 남부의 수용소 하늘에 시를 쓰는 조종사 이야기였다. 나는 오랜 시간 그 소설을 읽지 않았고 다만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실제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조종사가 고작 비행기 연기로 시를 썼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구름을 뚫고 다니며 구름으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들이 언제나 하나의 단어나 문장에서 출발하며, 그 단초가 『겨울에서』로 부터 왔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꿈꾸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겨울에 관한 소설을 생각한다. 내 생각 속에서 소설의 페이지를 넘긴다. 여기가 아닌 저기로 가려 했던 존재들. 그 존재들이 남긴 무수한 기억의 자취, 그리고 환영들. 그들이 가닿고자 했던 겨울이라는 도시를 향해 기차가 달린다. 그녀는 사진기를 들고 그 기차의 어느 객실에 앉아 있다. 자신을 벗어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에 가닿고 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그녀는 어쩌면 겨울에 가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령 가닿는다 해도 만나고자 했던 이들과는 어긋날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서 그녀는 차창 밖 어둠을 내다본다. 이처럼 겨울 도시로 향하는 여행자가 겨울을 한껏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가닿는 순간, 꿈꿔왔던 그녀의 겨울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이미지가 아니기에.

이미지는 사물과 나의 거리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완전히 가닿기 전까지만 바라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어야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언어로 적을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사이의 숨바꼭질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가닿으려 애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마침내 상대에게로 다가가 그를 껴안는다. 그러나 그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토록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흰 천을 뒤집어써서 만들어 낸 어둠 속에서 포옹하는, 마그리트의 그림 「연인」처럼. 사랑은 더듬고 만지려 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바라보기 위해서 당신과 나 사이에 칼 같은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향해서

그녀는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주변 사람들 모두 예술가였다. 그녀 역시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기에, 예술가 아닌 다른 일 하는 사람을 만나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무 살 무렵까지 그녀는 “자신이 보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 여겼고 “다들 나와 비슷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다가 유학을 떠나 프랑스에서 사진을 배우고 작업하며 뜻밖의 변화를 맞이한다. 사진을 찍으려면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야 했고, 사람을 만나려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이다. 전에 해본 적 없는 경험이었다. 조형 작업을 할 때는 실제 모델이 꼭 필요하진 않았다. 어떤 의미에선 조각마저도 머릿속 생각과 관념으로 창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달랐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자기 밖으로 나와 세상을 탐색하고, 실재하는 대상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19세기 사진사를 연구했던 지도교수를 따라 사진사를 공부하다가 생리학자 에튀엔 쥘 마레(Etienne-Jules Marey)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사진을 생리학 연구에 활용한 이였다. 흰 새가 날아오르는 찰나의 움직임을 분절하여 한 장의 사진 속에 포착한 그의 작업을 보면서 그녀는 사진만의 고유한 미학을 느꼈다. 사진은 글과 달리 보이는 것만을 표상할 수 있는 좁은 매체였고 영상과는 달리 흘러가는 현실을 붙박아 보는 이로 하여금 맨눈으론 볼 수 없는 시간이란 개념을 사고하게 했다.

어느덧 그녀는 에튀앤 쥘 마레의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로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그녀는 그 손의 움직임에서 한 세기 전 프랑스 사진가가 포착했던 흰 새를 찾아낸다. 청각장애인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손은 웃고, 떠들고, 슬퍼하면서 날갯짓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 손에 깃든 언어⎯날갯짓의 흔적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손만 찍을 순 없었다. 청각장애인에겐 표정도 수화의 일부였기에. 그래서 그녀의 첫 작업 <나는 본다(2010)>는 초상사진이 되었다.

처음 그녀는 그저 사진 찍기 위해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차츰 그들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고유성에 관심을 갖는다. 사진을 운동 이미지에 대한 미학적 탐구로 여겼던 한 사람에게 인간의 얼굴을 찍는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었으리라. 그녀의 말대로,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사진 위에 자신의 시선을 남김으로써 사진가가 그를 바라보던 태도가 어땠는지를 고스란히 되돌려 보여주기에.

 

그녀는 그 어떤 사진들보다 초기 사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사진 속에서 사진 찍은 자의 열망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초기 사진가들.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리라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 1초를 500개의 순간으로, 천 개나 만 개의 순간으로 쪼개어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운동 이미지를 발견하려 했던 사람들. 그들은 그저 진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무모한 꿈을 꾸었던 이들이었을까?

그녀는 헛되어 보이는 꿈을 좇아 평생을 바친 사진가들을 보며 스무 살 무렵 자신이 못다 쓴 소설을 떠올렸다. 자신의 소설 속에서 겨울을 꿈꾼 사람들. 초기 사진가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겨울로 떠나는 기차에 일찍이 몸을 실었던 사람들. 죽어도 죽지 않은 채 영원히 겨울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그녀는 역사 속 인물들을, 동시대 사람처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의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열정은 사진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있지 않은가.

그녀는 그들의 궤적을 한번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녀가 연구한 19세기 초기 사진가 가운데는 천문학자도 있었다. 그 사진가 겸 천문학자는 사진이 앞으로 천문학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거라 예측한 사람이었다. 실제 천문학자들이 사진을 연구에 활용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과학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그녀를 이렇듯 천문학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녀의 첫 작업 <사진은 학자의 망막(2012)>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청각장애인에서 천문학자로 촬영의 대상은 바뀌었으나, 그녀의 물음은 동일했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은 세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는가?

그녀는 인터넷 상의 천문학 카페에 가입해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전시를 찾아다니고, 천문 관측용 망원경 만드는 공방을 찾아 그들을 만나러 다녔다.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 많았다. 그중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아마추어 천문가의 망원경을 보기 위해 익산까지 간 일을 그녀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망원경 공방의 방장이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방에 망원경을 만들러 나오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방엔 그가 만들다 만 망원경이 남아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회원들은 황망함 속에서도, 천문학을 애호하는 그들의 방식으로 죽은 자를 추모하려 했다. 그들은 힘을 합해 망원경을 완성한다. 그러곤 그것을 익산의 원불교 재단에 기증한다.

그녀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망원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익산까지 간 그녀가 그 기억을 붙잡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망원경을 사진 찍는 일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확신이 없던 때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사진에 다 담아낼 수 없었다고. 정제된 사진 형식 속에 어떻게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고. 그래서 지금은 망원경을 찍은 차가운 사진 한 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작품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져 가는 현장이다

천문가 사진을 찍던 시기, 그녀는 <우리들의 눈>이란 협회를 통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 수업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 사진 이미지를 통해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녀의 물음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사물을 손으로 만지면서 접사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이때의 사진기는 돋보기 같은 확대경이다. 그럼에도 사진을 찍은 시각장애인은 정작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볼 수 없다. 볼 수 있는 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각을 가진 타인의 해석을 통해 사진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소통은 지극히 비장애인 중심이지 않은가? 그녀는 의문했다.

사진은 이미지를 바라보고 포착하는 작업이다. 바라보기 위해선 사진가와 사진의 대상 사이에 반드시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대상을 알기 위해서 도리어 거리를 좁히고, 그것을 만져야 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부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으로 감각할 수 있는 입체 형상으로 사진을 만든다면 그건 이미 사진이 아니지 않은가.

사진은 당연하게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볼 수밖에 없는 매체였다. 여름 햇살과 겨울 햇살의 색감 차이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잎사귀들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강도와 밀도, 아름다움은 또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그녀는 상대가 결국 볼 수 없고, 어떤 언어로도 사진을 전달할 수 없음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에게 사진을 배우던 아이들이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보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못 보면 어떠냐고. 그녀는 타자와 아무리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년 간,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 수업을 하다가 결국 그 일을 그만 두게 된 이유였다.

그녀는 건청인의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수화 대신 구화(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방법)를 익혀야 하는 청각장애인들을 떠올렸다. 그 상황을 여기 대입해 보자면, 사진은 지극히 볼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언어였고, 볼 수 없는 이에게 사진을 들이밀어 소통하자는 제안은 지극히 보는 사람 중심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해 사진이 필요한가. 시각장애인인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사진은 필요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시각은 절대적 감각이 아니었으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꼭 그것을 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앎(시각 이미지)을 시각장애인과 공유하려 했던 최초의 발상을 뒤바꿔보았다. 시각장애인의 앎을 어떻게 전달받을 수 있을까. 그러자 사진이 아닌 ‘문자 언어’라는 다른 길이 보였다. 그렇게 나온 작업이 <어떤 사람의 사진(2015)>이다.

 

그녀는 청주 맹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면서 시각장애인 쌍둥이자매 민주와 현주를 만났다. 청주 맹학교는 무척 작은 곳이었다. 기숙사 옆에 식당이, 식당 옆에 학교가 있었고, 그 가운데 운동장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학교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아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빛과 어둠도 구별하기 어려운 그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설령 그들이 세상의 모습을 전달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무엇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 사람을 만났고,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듯이 그 아이들에게도 그와 같은 경험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다만, 시각이 아닌 문자 언어로. 그녀는 먼저 일곱 명의 작가들에게, 두 아이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은 한 사람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작가들은 한 사람의 사진을 떠올리면서 글 썼다. 아이들 역시 점자화 된 글을 읽으며 그 사람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야 했다. 이후에 아이들은 글을 쓴 작가를 만났고, 글 속의 사람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고 대답을 들은 뒤,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혼자 사진을 찍는 작업에서와는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그전까지 그녀에게 작품이 작가 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결과물에 가까웠다면, 이때의 작품은 여러 사람에 의해 생성되는 사건들의 현장이었다.

같은 시기 영화 속 소리를 만들어내는 폴리 아티스트의 모습을 담은 <새와 우산(2015)>처럼 소리를 사진으로 표상하는 작업, <젖은 새 몸을 털며(2015)>처럼 사진이 아닌 퍼포먼스 작업을 거치면서 그녀에겐 새로운 고민과 물음이 생겨난다. 이제껏 그녀는 결과물이 꼭 사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영상이나 퍼포먼스, 혹은 글로도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안이했던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작업에 손을 대면서 사진가로서의 시각적 탐구를 게을리 했던 건 아닐까. 분명 사진으로만 표현 가능한 무엇이 있음에도, 쉽게 돌아섰던 건 아닐까. 시각장애인들과의 작업은 그녀에게 사진에 대한 질문을 남겼고 그녀는 그 물음을 손에 쥔 채 다음 여정을 떠난다.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에 가닿을 때 비로소 표현이 된다

전명은의 아버지는 조각가였다. 그녀가 채 열 살도 되기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마석에 작업실을 만들고서 이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에게 아버지는 마냥 친밀한 존재이지만은 않았다. 생전의 아버지는 늘 작업에 바빠 가정에 충실치 못한 가장이었고, 보통의 아버지들과 달리 직장에 다니지 않는 예술가였으니까. 한때 그녀는 아버지가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길 바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아버지처럼 예술가가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작업자로서의 아버지,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항상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 살아 있음의 감각에 집중하는 사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지나고서도 그녀는 아버지를 떠올릴 때, 동사를 현재형으로 썼다. 살아 있음을 느꼈던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 살아 있음의 감각에 집중했던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감각에 ‘집중하는’ 사람. 그녀는 아버지를 죽은 자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일찍이 겨울로 떠나간 사람이었을 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각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작업실을 썼고, 가족은 그 옆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래서 그곳엔 항상 어머니의 작업과 아버지의 작업이 뒤섞여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유품인 조각들 속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아버지의 작업을 사진 찍고 확대해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것이 조각가인 아버지를 사진가 딸이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훼손되기 쉬운 사물을 사진으로 박제함으로써 영원으로 만드는 것. 이미지를 구원함으로써 기억을 소생시키는 것.

아버지는 주로 큰 조각을 작업했지만 그녀는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작업만을 골라서 대형 사진으로 찍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케트, 완성 이전의 작업만을. (조각가는 보통 자신의 구상을 작은 모형으로 한번 만들어보고, 확신이 들면 큰 작품으로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보통 조각가들은 주물공장이나 석공장 장인의 기술적인 조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케트는 다르다. 그것은 조각가가 자신의 상상을 오롯이 홀로 구현해낸 최초의 산물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모니터로 보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었다. 확대된 작은 모형 안에는 아버지의 지문과 손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맨눈으로는 지나치기 쉬운 조형적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바라보았다. 무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시인은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비유를 쓴다. 사물은 전혀 다른 비유적 상관물을 만나면서 시 속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예컨대 나는 ‘잎사귀가 (나무에) 열려 있다’는 진술에, 적절한 비유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표현으로 삼는다. ‘잎사귀는 창문처럼 열려 있다.’ 그로부터 다음 문장이 쓰이기도 한다. ‘잎사귀는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창문처럼 잎사귀가 열릴 수 있다면, 잎사귀는 유리 같은 속성을 지녔을 것이며, 유리는 빛을 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의 이미지는 비유를 만나면서 운동하고, 의미를 전이시킨다. 전명은의 사진 속에서 나는 사진가의 작업이 시인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역시, 하나의 이미지로는 표현에 이르지 못한다. 어쩌면 사진가도 비유⎯이미지를 찾아냄으로써 원관념⎯이미지를 운동시키고, 그럼으로써 표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아버지의 조각에 관심을 갖던 시기, 아버지의 옛 친구였던 한 조각가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녀는 죽음 앞에 선 조각가의 시간과 생동하는 조각의 시간을 연결하면서 표현을 향해 다가갔을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새가 앉아 있는 듯한 흰 나뭇가지를 두 개의 시간 이미지에 연결해 마침내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 나뭇가지는 오래 전 그녀의 언니 집에서 버려질 뻔한 사물이었다. 그녀는 훗날 그 나뭇가지를 사진 찍으며, 그 속에서 에티엔 쥘 마레의 새를 다시금 발견한다. 오래 전 그녀가 청각장애인의 수화하는 손에서 찾아냈던 그 새를. 그녀는 나뭇가지 속에 새라는 이미지가 숨어 있다거나, 그 새가 아버지를 이해할 단서가 되리라고는 처음엔 생각지 못했다.

사물이 생명을 얻는 때는 이미지의 연결이 있을 때다. 아버지의 조각 곁에 놓인 나뭇가지는 죽었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듯하다. 아버지의 손길이 조각의 형상을 이루듯, 한때 수천의 새가 날아와 앉았던 흔적이 나무의 형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연결은 뜻밖의 순간에 기적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조각가 작업 이후, 그녀는 가장 삶에 가까운 주제를 탐색하다가 ‘체조선수’를 만난다. 그녀는 “선수가 심호흡하는 순간, 곧이어 펼쳐질 모든 움직임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작업 이전의 작업’에 대한 관심이 ‘절정이 아닌 직전의 순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녀는 파란 매트리스 위에서 체조 연기를 하기 직전의 소녀(<젖은 새(2017)>)를, 거대한 바다를 향해 뛰어들려는 한 마리 새로 보았다. 그녀에게 에티엔 쥘 마레의 흰 새는 이미지를 연결하며, 연결함으로써 그것을 구원하는 열쇠다. 전명은의 흰 새는 19세기 사진 속에서, 청각장애인의 수화하는 손으로, 다시 죽은 나뭇가지 위로, 그러다 심호흡하는 체조 선수에게로 날아간다.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기다린다

2014년, 그녀는 북아현동에 살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목련나무가 보였다. 그녀는 목련을 아름답다고 느꼈고 아름다움을 느낄 때 흔히 그랬듯 그것을 사진 찍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그녀는 풍경이 전과 달리 보인다고 느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왔다. 다음 해 삼월에도 어김없이 목련은 피었다. 목련을 보고서 다시 사월 십육일이 왔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로부터 매해 꽃을 사진 찍었다(<네가 봄이런가>, 2014~). 그전까지는 꽃이 피고 진다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풍경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풍경에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풍경은 그걸 바라보는 자의 창처럼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했던 초기 작업들을 떠올렸다. 무언가와 진실한 관계를 맺었다면, 못다한 말은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남기는 법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 풍경을 향해 마음을 꺼내듯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서간체(2018)>란 작업이 왜 그렇게 이름 지어졌을지 알 것 같았다.

<서간체>는 겨울 풍경을 찍은 작업이다. 그녀는 조각가 작업을 마치고, 사할린과 하얼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저 겨울 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추운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녀는 병약했던 소설가 김유정을 떠올렸다. 김유정은 그녀에게 언제나 겨울에서, 봄을 기다리던 존재였다.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꿈꾸며 밤마다 미친 듯 편지 썼던 사람. 편지 쓴 종이를 구겨버렸다가 쓸쓸히 다시 펴보았던 사람. 이제야 글을 읽는 독자는 안다. 그가 기다리던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봄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쓰고 또 기다렸다. 왜냐하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그녀는 생각했다. 소설가는 계절이 바뀌길 기다린다기보다 이 기다림을 기다렸으리라고. 그러곤 떠올렸다. 책상 서랍 안에 꿈처럼 잠들어 있는 미완의 소설을. 그 속에서 온 힘을 다해 겨울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을.